[20180207] (매일 파워 인터뷰) 장흥섭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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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8-04-2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680 |
"상인들 자구노력과 의지 침체된 전통시장 활성화 관건“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통시장 활성화 정책의 수혜자도 피해자도 모두 시장상인들인데요. 바로 이 시장상인들의 자구 노력과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흥섭(68`경북대 명예교수)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 원장은 우리나라 전통시장의 성공적 모델로 속초 중앙시장을 꼽았다. 상인들 간의 유대감이 강하고, 고객을 맞이하는 상인들의 표정과 마인드가 옛날 전통시장에서 느꼈던 ‘살아 있는 시장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는 설명이다. 이에 속초시 공무원의 적극적 지원이 덧붙여지면서 속초시민과 관광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현대판 명소’로 새롭게 탈바꿈했다. “대구에서는 서남신시장을 주목할 만합니다. 도시철도역에 인접해 있어 접근성이 좋고, 족발`반찬 등 핵심 점포가 있으며, ‘아리따움’ ‘왼발오른발’ ‘러브아트’ 등 재미있는 상호들이 많아 고객 유인 효과가 큽니다. 무엇보다 강력한 상인회를 바탕으로 한 희생적이며 적극적인 활동이 돋보이는데요. 상인들의 활성화 의지가 강하다 보니 초`중`고 그림그리기대회, 요리경연대회, 특가판매 등 마케팅 활동을 공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고, 현금인출기, 어린이 놀이방, 수유방, 사물함 등 고객을 위한 다양한 편의시설을 잘 갖출 수 있었습니다.” 설 연휴가 일주일 남짓 앞으로 다가왔다. 많은 시민들이 명절을 나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는 시기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통시장이 백화점`대형마트 등과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하는 시즌이기도 하다. 마케팅 전공 학자로서 드물게 전통시장 연구에 몰입해 온 장흥섭 원장을 만나 지나온 삶과 한국 전통시장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상인의 아들, 교수가 되다 장 원장은 1951년 경북 왜관에서 1남 4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왜관시장에서 건어물 행상으로 출발해 장 원장이 태어날 때쯤 어렵사리 점포를 마련했다.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열 살 때 아버지가 성주 5일장을 다녀오다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끝났다. “네 살 위 누나는 아예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와야 했습니다. 저는 그래도 외아들이라는 특권(?)으로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었지만, 설`추석 등 명절 대목에는 등교를 포기해야 했습니다. 생계가 먼저니까요. 왜관시장은 우리 가족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고, 저에겐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저는 시장상인으로 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어느 날 국민교육헌장을 외우는데, “…새 역사를 창조하자”는 문구가 머릿속에 박혔다. “내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 우리 집안의 새 역사를 내가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대구로 나가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어머니께 어렵게 드렸습니다. 그때 ‘그래, 우리가 좀 더 고생을 하더라도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사람이 되어라’ 하시는 어머니 말씀을 들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렇게 장 원장은 왜관초교, 순심중을 거쳐 대건고를 졸업했다. 영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에도 취업을 하지 않고, 전공을 바꿔 고려대 대학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시절에 마케팅을 공부하기로 한 것은 ‘시장에서 살아온 경험’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대졸자 취업이 아주 잘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는데요. 다행히 왜관에 미군부대가 온 이후 시장의 장사가 잘돼 가정형편이 나아진 것도 크게 작용했습니다.” 태평양화학 기획부에서 현장 경험을 쌓은 장 원장은 영주전문대, 진주 경상대 교수를 거쳐 1983년 경북대 교수로 임용되었다. ▶전통시장 연구, 마지막 과업! 경북대 경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2003~2004년)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연구자로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겠다는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 것이다. 오랜 고민 끝에 ‘전통시장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해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마케팅 분야 1세대 연구자가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전통시장에서 나고 자란 삶의 경험이 원인이었던 만큼 학자로서 마지막 삶을 전통시장 연구에 바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2005년 7월 전국 최초로 지역시장연구소가 경북대학에 법정연구소로 설립되었다. “당시 경북대 내에는 100여 개의 연구소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통시장이 학문적 연구의 대상이 되느냐는 논란부터, 연구소를 또 만드느냐는 반대 주장까지 여론이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전통시장 연구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설득하는 데 적잖은 애로가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면, 좋은 집안 환경에서 공부만 한 교수들은 전통시장에 대한 연구를 하고 싶어도 상인들에게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상인들 마음의 문을 열게 하려면 ‘그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상인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그들의 속내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후 장 원장은 교수라기보다는 ‘시장 사람’이 되었다. 거부감 없는 털털한 외모(?)도 시장상인들과 한 무리를 이루는 데 한몫했다. 경북대 지역시장연구소 내에 상인대학을 운영하면서 구미중앙시장, 영해시장, 서문시장, 교동시장 등 30여 개 전통시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교육을 실시했다. 전통시장 활성화 연구용역 30건, 전통시장 전문서적 4권 출판, 전통시장 관련 논문 10여 편 등의 연구실적을 올렸다. 또 경북대 경영대학원에 상인대학원을 설립, 다섯 번(5년간)이나 주임교수를 맡아 250명의 제자를 배출했다. 전통시장진흥재단을 전국 최초로 대구에 설립하는 중추적 역할 역시 당시 경북대 지역시장연구소장이었던 장 원장이 맡았다. “시장경영진흥원(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전신)이 각 지역의 전통시장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계획을 추진해 왔는데 현장감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각 지역의 전문가가 계획을 수립해 전통시장을 지원하면 효율성이 높아지고, 사후 관리 및 후속 정책과의 연계성이 향상될 뿐만 아니라 전통시장에 대한 노하우도 축적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해외 선진 전통시장의 교훈 장 원장은 전통시장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면서 방학이 되면 전 세계 전통시장 중 벤치마킹할 만한 곳을 찾아다녔다. 때로는 연구원들과, 때로는 가족들과, 때로는 홀로 찾아다닌 전 세계의 전통시장이 70여 개국 160여 곳에 이른다.(해외 전통시장 탐방의 결과물은 이미 여러 권 책으로 출판되었고, 앞으로도 후속 연구물이 계속 나올 예정이다.) “세계적 명품 전통시장은 뚜렷한 특징을 가진 차별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 멜버른 프라란시장은 어린이 놀이터와 작은 동물원을 갖추고 있어 그 지역의 젊은 여성들이 아이와 함께 많이 이용하고 있었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산델모(일요)시장에서는 다양한 퍼포먼스와 연주회가 열려 찾아오는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었는데요. 상인들이 마테차를 마시고, 큰 고목 아래에서 탱고를 추는 모습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이즈말롭스키시장과 스웨덴 스톡홀름 회트리네트시장의 경우는 일반적인 전통시장 내에 벼룩시장이 활성화된 형태로 관광객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별의별 신기한 물건이 볼거리지만, 구경 온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라는 설명이다. 터키 이스탄불 그랜드바자르, 스페인 마드리드 보케리아시장, 헝가리 부다페스트 중앙시장, 브라질 상파울루 중앙시장 등은 전통시장의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이어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진솔한 삶의 방식도 좋은 자원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얀마 바고시장과 태국의 짜뚜짝시장, 라오스 방비엠시장, 베트남 카이랑시장 등은 현대적이거나 편리하지는 않지만 고유하고 특색 있는 삶의 방식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의 전통시장도 그 지역적 진정성(authenticity)을 담아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 전통시장의 미래 “우리나라 1천500여 곳의 전통시장 가운데 300여 곳을 직접 다녀봤습니다.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면 천편일률적이어서 차별화가 거의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 전통시장을 활성화시키려는 상인들의 의지마저 미약하다는 것입니다.” 장 원장은 “상인교육을 해보면 그 효과가 1개월 정도밖에 가지 않는다”면서 “보통 60대가 넘는 전통시장 상인의 세대교체가 한국 전통시장 개혁과 생존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의식이 변하지 않으면 근본적 변화가 힘든 만큼, 상인이 젊어지면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이 젊어지고 매출과 이익은 자연스레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나이만 젊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장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청년들이 치열한 삶의 의지와 강한 인내심으로 무장을 한 뒤 전통시장에 뛰어들 때에만 결실을 볼 수 있고, 정부 지원의 효과도 제대로 발휘될 수 있습니다.” 장 원장은 “재단(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이 전통시장의 변화와 개혁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는 조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의 가장 큰 과제”라면서 은퇴한 후에는 “향후 전통시장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세계 70여 개국 전통시장을 분석한 책을 지속적으로 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매일신문 석민 선임기자 sukmin@msne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