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4] (책과 사람)「세계 전통시장, 어디로?」
작성일 2018-04-2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062
"상인들 의식 달라져야 전통시장이 살아나" 53국 120곳 현장 누빈 마케팅 교수
세계 전통시장, 어디로 가고 있는가?

경북대 경영학과 장흥섭 교수가 내년 2월 정년퇴직을 앞두고, 39년간의 교수생활을 마무리하는 책 '세계 전통시장,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펴내 주목받고 있다. 아카데믹한 연구를 주로 하는 대학에서 전통시장과 관련한 책을 펴낸 것도 이색적이지만, 세계 50개국 100개의 대표적 전통시장에 대한 현장조사와 분석이 담겨 있어 놀랍다. 마케팅 전공 교수가 전 세계 6대주의 유명 전통시장을 직접 방문`조사하여 집필한 전통시장 전문서적은 세계적으로도 극히 드물다. 아마 이 책이 세계 최초일 가능성이 높다.
 
"1981년부터 36년 동안 53개국 120여 개 해외 전통시장을 직접 방문하고 조사했습니다. 많은 자료 중에서 핵심적인 것을 골라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퇴직 후 시간이 더 허락한다면, 지역별로 좀 더 전문화되고 깊이 있는 내용을 담아 시리즈로 발간할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장 교수가 해외 전통시장을 헤매고 다닌 이유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선진시장을 찾아내고, 우리나라 전통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미래지향적인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전통시장은 내 삶의 터전
 
털털한 외모의 장 교수는 '학자'나 '교수'라기보다는 '마음씨 좋은 시장 아저씨' 같다. 시장판에서 그를 대하는 상인들도 전혀 거리감이 없다. 이런 장 교수의 이미지는 억지로 노력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전통시장 자체가 장 교수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장 교수의 부모님은 칠곡군 왜관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했다. 전통시장이 어린 시절 장 교수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또한 전통시장은 삶의 아픔이기도 했다. 10살 되던 해 선친이 성주시장 대목장을 보고 돌아오시다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하셨고. 그 후 전통시장은 장 교수 가족에게 생존을 위해 살아내야 할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되었다. 장사와 집안일을 도와야 했던 누나는 중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장 교수도 어렵게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면서, 틈만 나면 시장에서 일손을 도와야 했다. 명절 대목에는 아예 학교를 빠졌다.
 
"비록 어렵고 힘든 시절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왜관시장에서 보낸 게 다행스럽고 감사합니다. 제가 전공으로 마케팅을 선택한 것도 어린 시절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전통시장과 상인들의 모습이 가슴 깊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통시장에 남은 인생을 바치자
 
전공이 마케팅인 만큼, 1980년대 초부터 가끔씩 전통시장과 관련된 조사와 연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전통시장이 학계의 주요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런 장 교수에게 사고의 전환을 가져온 시기는 2005년쯤이었다. 당시 경북대학교 경상대학장과 경상대학원장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남은 교수 생활 동안 신명을 바쳐 일할 수 있는 분야를 고민했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전통시장 활성화'에 여생을 바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다른 분야는 많은 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지만, 우리의 전통시장은 정책적 관심과는 달리 학계로부터 소외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년 이후 정부는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었습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전통시장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찾아나서기로 했습니다."
 
이런 의지의 결실로, 2005년 7월 경북대 경제경영연구소 내에 지역시장연구센터를 만들고 이를 토대로 2007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시장전문연구소(법정연구소)인 경북대 지역시장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지금까지 151회에 걸쳐 7천200여 명의 상인들을 대상으로 각종 강의를 해왔고, 영덕시장을 비롯한 14개 전통시장에서 상인대학을 운영했다. 2011년부터는 경북대 경영대학원에 상인최고경영자과정을 개설해 벌써 250여 명의 상인 리더를 배출하기도 했다. 전통시장 활성화에 대한 장 교수의 집념은 2016년 1월 재단법인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 설립으로 이어져 초대원장을 맡고 있다.
       

◇시장 상인들의 의식 개혁이 출발점
 
이 책은 모두 13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시아(18개국) 전통시장<4개 장>, 유럽(20개국) 전통시장<4개 장>, 북아메리카`남아메리카`오세아니아`아프리카(12개국) 전통시장<4개 장>을 소개하고 분석한 뒤, 마지막 13장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세계 전통시장, 어디로 가고 있는가?'로 시사점을 제시한다.
 
"세계의 전통시장은 일반적인 공통점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 역사와 환경만큼이나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쿄 아메모코 시장과 츠키치 시장, 오사카 구로몬 시장의 경우는 '전통'을 시장에 담았고, 또한 소비 패턴을 고려한 현대적 구매 방식을 통해 백화점`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진솔한 삶의 방식도 좋은 자원입니다. 미얀마 바고 시장과 태국의 짜뚜짝 시장, 라오스 방비엥 시장, 베트남 카이랑 시장 등 동남아시아의 전통시장은 현대적이거나 편리하지는 않지만 상인들의 고유하고 특색 있는 삶의 방식 자체가 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관광형시장 사업에서도 지역의 진정성(authenticity)을 담아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장 교수는 결국 전통시장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개성'과 '정체성'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천편일률적이고 개성이라고는 찾기 어려운 전통시장을 그대로 두고. 화장실과 주차장, 아케이드 공사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지역의 랜드마크인 스페인의 산타 카테리나 시장, 문화와 예술을 판매하는 영국의 코벤트 가든 시장과 산 텔모 시장(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도레고 광장) 등이 있는 반면, '불편함'과 '옹고집'을 경쟁력으로 삼는 전통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독일 뮌헨의 빅투알리엔 시장은 전통의 뚝심을 고수하는 시장으로 유명합니다. 비 가리개 등 일체의 건축물이 없는 노천시장을 고집하고, 상점 주인은 바뀌어도 품목을 바꿀 수 없다는 암묵적인 약속을 반드시 지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상점이 대를 물려가며 운영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불편하고 낙후된 장터'처럼 보이지만, 유럽의 전통시장은 이 불편함이 관광객과 지역민을 불러들이는 독특한 '멋'이 되고 있습니다."
 
장 교수는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전통시장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주민들과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으며, 전통시장 활성화는 상인 의식의 현대화에서 출발해야 하고 상인 의식의 현대화는 상인 교육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단기적 이해관계에 매몰된 상인들로 이루어진 전통시장에서 미래를 찾긴 어렵다는 말이다.
 
매일신문 페이스북 온라인 기사. 석민 기자 sukmin@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