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6] 「서민경제의 터전, 전통시장」 기차역과 백화점을 품은 '번개시장', 신선한 과일과 곡물이 강점백화점과 상생 실천에도 앞장서...
작성일 2018-04-25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617
1965년 9월 16일 오전 4시 대구역. 플랫폼으로 열차가 들어서자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두 손 가득 큰 포대를 들고 있는 남성부터 자신의 몸통만한 짐을 머리에 이고 있는 여성까지 그들은 모두 역사 옆에 위치한 골목길로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이들은 이내 골목에서 하나 둘 자리를 잡은 후 가지고 온 짐들을 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산에서 온 콩부터 구미에서 온 고추, 청도에서 온 복숭아까지 신선한 농산물들이 골목길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흘러 가지고 온 물건을 다 판 사람들은 이내 하나둘 자리를 떴다. 정오가 되기도 전에 골목은 언제 시장이 열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해졌다.
 
번개같이 열렸다 번개같이 사라진다는 것에서 유래가 된 ‘번개시장’은 전국 곳곳에 열린다. 대구에서도 여러 곳에서 열리는 번개시장이 있지만 중구 태평로의 ‘번개시장’은 간판까지 달린 ‘상설시장’으로 언제든지 인근 지역의 신선한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전통시장이다.

◆신선하고 저렴한 농수산물이 항상 가득한 곳
 
대구 중구 태평로에 위치한 번개시장은 1905년에 개장된 대구역 바로 옆에 위치한 시장으로, 약 2천923㎡ 대지에 2천189개의 점포가 운영되고 있다.
 
이 시장은 언제 처음 형성됐는지 정확히 기록돼 있지 않다. 경산, 왜관, 김천, 구미 등 인근지역에서 농산물을 키우던 농부들이 새벽녘 수확한 농산물을 챙겨 기차를 타고 대구역 인근에서 판매한 것이 시초였다.
 
50년이 넘도록 번개시장을 지켜온 황인순(76·여) 어르신은 “번개시장은 말 그대로 언제 생겼는지 언제 없어졌는지 모른다고 해서 번개시장이라고 한다”며 “저기 구미에서 고추농사를 짓는 아저씨부터 경산에서 콩 농사를 짓는 할머니까지 새벽녘만 되면 이곳에 다 모여서 팔다가 다 팔리면 집에 가고 그랬다”고 말했다.
 
이후 번개시장은 장터가 열리던 시장과 인근 상가들이 합쳐지면서 1988년 상가건물형의 시장으로 등록됐다. 그러다 2003년 대구역이 있는 역사에 롯데백화점 대구점이 들어서면서 현재는 백화점 바로 옆에 위치한 시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똘똘이상회 이주용(67) 대표는 “번개시장은 약 60년 전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됐다”며 “이 시장에는 전국에서 갓 수확된 농산물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신선하고 품질 좋은 물건들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번개시장이 이처럼 전국 각지에서 농산물이 모일 수 있는 것을 시장 바로 옆에 기차역이 있어서다. 한 상인은 “60, 70년대 생산자들은 직접 물건을 팔아야 하는데 기차역을 타고 손 쉽게 농산물을 팔 수 있는 번개시장이 이들에게는 딱 맞다”며 “기차를 타고 내려서 가까운 곳에서 물건을 펼치고 팔았던 번개시장은 본의 아니게 신선한 농산물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번개시장은 기차역을 통해 물건을 실어나르는 풍경은 볼 수 없지만 도시철도 1호선과 연결돼 있다는 점과 바로 옆에 롯데백화점이 자리해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은 시장이다. 이 같은 잠재고객이 많다는 장점을 십분 살려 번개시장은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신선한 곡물류와 과일류를 판매하고 있다.
 
시장을 찾은 김선희(55·여) 씨는 “산지에서 직접 오는 신선한 농산물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에 대구에서 좀 똑똑한 분들은 다 이곳으로 와 장을 본다”며 “특히 곡물이나 과일, 채소 등은 여기만큼 신선하고 여기만큼 저렴한 곳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백화점과의 상생을 실천하고 있는 시장, 부족한 콘텐츠 아쉬워

번개시장에는 생활용품부터 채소, 과일, 곡물, 건어물 등 다양한 제품들이 판매되는데 그 중 과일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품목 중 하나다. 번개시장 안에 농협 태평로 공판장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공판장의 중도매인 이창동(49) 씨는 “농협 직영 공판장은 대구에 두 곳 뿐인데 그 중 한 곳이 이곳”이라며 “이곳에서 경매되는 질 좋은 과일을 바로 옆 번개시장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번개시장은 백화점과 상생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시장 중 하나이다. 롯데백화점 대구점은 지난 9월 5억 원의 비용을 들여 ‘상생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시장을 찾는 어르신들이 시장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를 설립한 것. 또한 샤롯데 광장 한 쪽에 위치해있던 컨테이너형 구두수선방을 백화점 3층 애비뉴엘 라운지 옆에 공간으로 별도 임대료 없이 옮겨 주기도 했다.
 
앞서 지난 2012년에는 ‘러브스토어 프로젝트’를 열어 번개시장 내 의성옻닭식당의 실내 환경 리모델링을 지원했고, 번개시장 상인들을 위한 무료 건강검진 기회와 장학금 전달 등 꾸준한 상생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대구전통시장진흥재단 장흥섭 원장은 “번개시장은 지리적, 교통적인 측면에서 유리하고 백화점과의 상생프로그램을 통해 연계 또한 잘 진행되고 있는 시장이다”라며 “다만 번개시장의 역사로 시작돼 아직까지도 전국 각지에서 공수되는 신선한 농수산물과 가공식품 등이 아주 저렴하게 판매된다는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또한 “번개시장의 역사와 이점을 살린 특색 있는 콘텐츠나 아이템들이 시장에 도입된다면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디지털경제 김지은 기자·김보람 기자 kje@deconomic.co.kr